南方創作/답사

부여 가림성(加林城)

이름없는 꿈 2017. 8. 23. 20:46

축조 연대가 확실한 유일한 백제 산성


二十三年... 八月 築加林城 以衛士佐平苩加鎭之
동성왕 23년(서기 501) ... 8월, 가림성(加林城)을 쌓고 위사좌평 백가에게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23년(501) 조


사적 제4호. 둘레 600m, 지정면적 12만916㎡. 현재 테뫼형 산성으로 남·서·북문지와 군창지, 우물터 세 군데 및 토축보루의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다.
501년(동성왕 23) 8월 위사좌평(衛士佐平) 백가(苩加)가 축조하였다고 전하는데 당시 이곳이 가림군(加林郡)이었으므로 가림성(加林城)이라고도 한다.
성의 형태는 테뫼형이고 성벽 높이는 대개 3∼4m이며, 축조방식은 일부는 석축, 일부는 토축으로 되어 있다. 일부는 안으로 흙을 다져 내탁(內托)을 하고 외면은 석축을 하였으므로, 흙을 파낸 곳은 자연히 호(壕)를 형성하고 있다.
서쪽 성벽의 석축 부분이 가장 잘 남아 있는데, 그 기초 부분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성벽보다 약 1.5m 정도 앞의 부분까지 넓혀서 기초를 만들었고 토축 부분은 산의 능선을 따라 지그재그식으로 축조하고 있다.
주문인 남문의 문지 너비는 4m이며, 초석이 남아 있다. 이 남문지 앞에 있는 토성산(土城山)에 둘레 약 200m의 토축보루가 있는데 이 토축보루에는 부속된 소보루(小堡壘)가 또 있다. 이와 같은 대·소성의 배치는 백제산성의 독특한 점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성을 쌓은 백가는 동성왕이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잡혀 죽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상위관직인 위사좌평으로 성주(城主)를 삼았다는 사실은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하여준다.
또한, 백제시대에 축조된 성곽 가운데 연대가 확실한 유일한 것이라는 점과 옛 지명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성은 백제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는데 당시 이곳을 공격하던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가 이 성이 험하고 견고하여 공격하기 어렵다고 한 것에서 난공불락의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초기에 장군 유금필(庾黔弼)이 견훤(甄萱)과 대적하다가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하였다고 하여 해마다 제사를 드리는 사당이 성안에 있다.

                                                                                  - “부여성흥산성”,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가림성은 필자의 사극 구상에 시초가 된 곳들 중 한 곳이고, 극 종반부의 주요 무대가 될 곳이기도 하여 필자는 이곳을 2012년 5월과 6월 연달아 답사한 이후 최근까지 수차례 다녀온 바 있다. 위에 소개된 내용대로 <삼국사기>에 축조연대가 기록되고 일찌감치 그 위치가 확인된 백제 산성이다.


현재의 부여 사비성 유적(부소산성 기준)으로부터 도로상 18km 정도 남쪽, 부여군 임천면(林川面) 군사리에 있는 면 소재지를 품은 산 정상부에 있는 가림성은 성흥산성(聖興山城)이라고도 불리며, 후자가 정식 명칭으로 불려왔으나 최근에는 전자로 불리는 추세이다. 임천면 면 소재지에서 산비탈길로 700m 정도 오르면 해발 260m의 성흥산 정상부 부근, 성 남문지(南門址)에 다다르게 된다. 가림성은 남문지를 중심으로 서쪽 성벽 일부가 남아있으며 현재는 발굴과 정비가 반복되고 있다.



                                                      면소재지에서 가림성으로 가는 길 입구의 안내판 (2012. 5)



                                                                             가림성 유적 개략도(2012. 5)



                                                               가림성 성벽 발굴조사구간 실측도 (2016. 7)



                                                                            가림성 서남부 성벽 (2017. 8)



                                                                  가림성 표지비와 서남부 성벽 (2017. 8)


‘사랑나무’와 “수륙(水陸)의 요충”
산비탈길 끝에 있는 주차장에서 가파른 계단을 잠시 오르면 나타나는 가림성 남문지에는 높이 22m의 큰 느티나무가 홀로 서 있는데 2005년 사극 <서동요>에서 서동(무왕)과 선화공주 에피소드에 배경으로 등장한 이후, 사극(<대왕세종>, <계백> 등)을 포함한 다수의 드라마에서도 배경으로 애용되어 ‘성흥산 사랑나무’라고 불리며 유명해졌다. 이 나무는 수령(樹齡)이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하니 백제 시대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백가의 난’ 등과도 관련이 없지만 백제 유적지에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역사를 알리는 장소가 되고 있다.



                                                             '사랑나무'로 불리는 가림성 느티나무 (2012. 5)



가림성 느티나무 (2017. 8)


‘사랑나무’가 드라마의 배경으로 애용되는 이유는 나무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이 한 몫 하는 듯하다. 특히 동쪽의 가파른 비탈 아래 금강(백강, 백마강)이 바라다 보이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주변 지역 감시가 용이한 장점이 있으며, 가림성이 이곳에 축조된 이유를 말해주기도 한다. 또 동성왕이 사비 천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황 추정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느티나무 주변에서 바라본 가림성 동부. 멀리 보이는 물줄기가 금강(백마강)이다. (2017. 8)


현재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성으로 비정되는 가림성은 금강 하구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금강변에 위치한 익산·강경·웅진·부여지역 등을 제압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백제 중앙정부도 이 곳을 군으로 편제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비로 빈번하게 수렵을 나가면서 이 지역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동성왕은 마침내 사비 천도 계획을 세우고, 금강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을 제어할 수 있는 이곳에 가림성을 축조하고 위사좌평 백가를 파견하였던 것이다... 
                                                - 이용빈, “동성왕의 왕권강화 추진과 신진세력”, <백제문화사대계연구총서 4권-웅진도읍기의 백제>, p.92


군사 요충지로서 가림성의 면모는 백가의 난(501~502) 이후에도 백제부흥운동기(663) 당과 신라의 주류성(周留城) 공략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 조칙으로 우위위장군 손인사로 하여금 군병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그들을 구원케 하였다. 인사가 인궤 등과 더불어 서로 합하니 군병들의 사기가 크게 진작되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가림성은 수륙의 요충이니 그 곳을 먼저 치기를 요청한다.”고 하자, 인궤가 말하기를“가림성은 험하고 단단하여 급히 공격하면 군사들이 상하여 결손이 있을 것이고, 굳게 지키면 시일을 많이 허비하게 될 것이니, 먼저 주류성을 공격함만 같지 못하다. 주류는 적의 소굴로 흉포한 무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악의 근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그 근원을 뽑아야 된다. 만약 주류를 평정한다면 나머지 모든 성들은 스스로 항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구당서(舊唐書)> 열전 유인궤(劉仁軌) 조, 심정보(2008), “부흥군 최후의 항전”, <백제문화사대계연구총서 6권-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 p.259. (강조 필자)



                                                                              비오는 가림성 (2016. 7)



                                                 비오는 가림성. 스산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2016. 7)



                                                           가림성 북문지 (위 '개략도'에서는 '동문', 2012. 6)



                                                                     북문 부근 발굴중인 성벽 (2017. 8)



                                                              가림성 내 고려 개국공신 유금필을 모시는 사당 (2012. 6)

 
* 대조사(大鳥寺)
임천면 면 소재지에서 가림성으로 올라가는 성흥산 비탈길 중턱에 있는 대조사는, 백제 성왕(성왕, 재위 523~554) 때 인도까지 다녀온 겸익(謙益)이라는 승려가 관세음보살이 큰 새(大鳥)로 변하여 성흥산 중턱 바위에 앉아 있는 꿈을 꾸고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고찰(古刹)이다. 가림성의 바로 아래에 있음에도 필자는 본의 아니게 답사 때마다 방문을 놓쳤는데 앞으로는 들를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


대조사에는 보물 제217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려 석불상인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이 있는데 높이 10m의 독특한 양식을 가진 거대 석불상인데, 논산 관촉사의 미륵불상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이 석불상도 드라마의 촬영지가 된 적이 있다. 타임 슬립 판타지 사극인 <신의>(2012, SBS)에서 극중 14세기 고려의 젊은 장수 최영(이민호 분)이 미래로 통하는 ‘문’이 이 석불상 앞에 나타난다.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