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왕제(辰王制) 가설 살펴보기 <3> - 진왕제의 완성과 변천 백가제해(百家濟海)의 이력 요서 북부에서 발굴되는 이른바 ‘요하문명’의 고고학적 성과물들을 단군조선의 시원적(始原的) 정치체와 단군조선 자체의 중심지 유적, 유물로 추정한다는 가정 하에, 단군조선의 체제를 ‘연맹 제국‘으로 파악한다면 진왕제의 기원은 단군 체제라고 할 .. 南方創作/列傳 2015.02.21
진왕제(辰王制) 가설 살펴보기 <2> - 통설 vs 진왕제 가설, 단군조선-부여의 거수(渠帥) 연맹 체제와 진왕제의 기원 칠지도 명문과 광개토태왕비문 泰和四年 五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 ○○○○作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의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가 만들었다. 온갖 적.. 南方創作/列傳 2014.12.30
진왕제(辰王制) 가설 살펴보기 <1> - 80개의 소국과 삼한, 백제(伯濟)와 백제(百濟) 신라권 소국 유적에서 발굴된 백제식 관모 성림문화재연구원은 30일 "의성군 의뢰를 받아 금동제 관모를 비롯한 약 1000여 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의성 금동관모는 장식용 모자의 일종으로서 5세기 후반 무렵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경주를 제외.. 南方創作/列傳 2014.11.19
동성왕 초기 <2> - ‘왜왕 무’의 국서와 대(對) 고구려 정책 동성왕(東城王, 말다(末多) 또는 모대(牟大), ? ~ 501, 재위 479~501): <삼국사기> 기록상 백제의 24대 왕. 왜국 웅략왕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큰 곤지(昆支)의 아들로 <일본서기>에는 ‘말다’, <삼국사기>와 <남제서>에는 ‘모대’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 南方創作/列傳 2014.08.17
동성왕 초기 <1> - 동성왕의 출자(出自) 추정과 479년의 형세 동성왕(東城王, 말다(末多) 또는 모대(牟大), ? ~ 501, 재위 479~501): <삼국사기> 기록상 백제의 24대 왕. 왜국 웅략왕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큰 곤지(昆支)의 아들로 <일본서기>에는 ‘말다’, <삼국사기>와 <남제서>에는 ‘모대’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 南方創作/列傳 2014.07.31
월주백제와 요서백제 <3> - ‘대륙백제’의 생존양식과 세력기반 추정 서해와 남해의 해상 세력: 후대의 세 가지 사례들 요서와 월주 지역에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대륙백제’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사료나 유적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를 추측하게 하는 후대의 사례들이 존재하는데 잘 알려졌듯이 8세.. 南方創作/列傳 2014.07.04
월주백제와 요서백제 <2> - 북위(北魏)의 발흥과 풍태후(馮太后)의 등장 및 그 영향 타브가치(拓跋鮮卑)의 중원 국가 건설 4세기 후반부터 동몽골과 요서지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크게 성장한 타브가치족은 386년 북위(北魏)라는 국가 체제를 갖추고 중원 황하 이북의 세력 판도에 중요 변수로 등장하게 된다. 타브가치는 ‘탁발선비’(拓跋鮮卑)라는 한자 표기에도 불.. 南方創作/列傳 2014.06.28
월주백제와 요서백제 <1> - 남북조(南北朝)의 정립과 주변 세력의 향배 바다 건너 회수(淮水)의 남과 북 백제 본국에서 해구의 난(478년 봄) 이후로 14세의 어린 삼근왕의 시대는 사실상 끝나게 되는데 (답사 포스팅 ‘아산 영인산성’ 참조) 이후의 정국은 수도 웅진성은 진(眞)씨 등의 세력이 장악하고, 이외에 곤지의 영향권이었던 영산강 유역의 소국들, 가야.. 南方創作/列傳 2014.06.08
아산 영인산성 - 대두성과 백제 내전(478) 대두성(大豆城)을 찾아서: 아산의 산성군(群)과 영인산성 한성백제 피난세력의 중심지이며 478년 해구가 반란을 일으킨 곳으로 기록된 대두성이 어디였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사료는 없다. 다만 한성 함락 이후 현재의 경기도 이남으로 밀린 백제의 판도로 보아 웅진 부근의 어느 지점일 .. 南方創作/답사 2014.06.04
문주왕과 해구 <3> - 백제 내전기(475~479)의 인물들 문주왕(文周王, ? ~ 477, 재위 475~477): <삼국사기> 기록상 백제의 22대 왕. 개로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출신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상좌평을 지냈으며, 개로왕의 명을 받고 신라에서 1만의 원병을 이끌고 오지만 한성이 함락당하고 개로왕이 처형당하자 웅진으로 수도.. 南方創作/列傳 2014.05.21